2009년 01월 28일
주장 5 : 가격과 이익은 필요불가결한 신호장치로서 함께 기능한다
욕망 및 욕구, 즉 특정한 제품에 대한 수요는 항상 변화한다. 소비자들은 지금 당장은 X라는 물건을 택하지만 나중에는 Y라는 물건을 택한다. 한편 제품공급 역시 엄청나게 많은 변수에 따라 변화한다. (예를 들어 기후는 곡물의 공급에 영향을 미친다.) 가격에 의해 수요와 공금급에 대한 정보가 모든 사람에게 알려진다. 높은 가격은 그 재화의 수요가 높다는 사실을, 낮은 수요는 그 재화의 가격이 낮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러한 정보는 경제적 삶을 간결하게 만들어준다.
가격이 수요, 공급상황을 알려주는 것이긴 하지만, 이익이 없는 재화의 가격은 존재할 수 없으며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내가 사과소스를 제조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수요가 엄청나거나 사과가격이 엄청나게 저렴하거나 설탕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이익이 높다고 가정해보자. 높은 이익으로 인해 나는 현금(또는 신용)을 얻고, 나의 생산성은 더욱 증가한다. 그 밖에 다른 생산자들 역시 나와 동일하게 사업을 확대할 거능성이 높고, 몇 명의 새로운 생산자들이 사과소스 제조업에 뛰어들 수 잇다. 어느 경우든 이익이 평균수준이 될 때ㅔ까지 공급이 늘어날 것이다.
이와 달리, 수익성이 상당히 떨어지고 공급이 위축되면, 다시 수요와 공급은 균형을 이루게 된다. 사과소스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구입할 수 있고, 생산자들은 계속해서 균형을 이루기 위해 운영에 필요한 이익을 실현하려 할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경쟁시장에서 이익을 추구할수록 공급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고, 다라서 소비자 가격은 좀처럼 올라가지 않고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서로 경쟁하며 최선을 다해서 비용을 줄이려 애쓴다. 경쟁의 역동성으로 생산비용이 낮아지고, 결국 제품가격이 낮아지는 것이다.
이익시스템은 경제시스템에서 생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효율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이익흐름이 정체되는 '병목'부분을 정확하게 파악한다. 이를테면 마크 쿨란스키는 자신의 책 <세계를 바꾼 어느 물고기의 역사>에서 16세기 이후의 유럽사람들이 섭취하던 단백질 중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대구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이와 함께 과거 거대한 산업이었던 대구어획산업의 발전을 다루고 잇다. 첫 번째 병목부분은 지나치게 작고 부서지기 쉬운 선박이었다. 이 같은 이유로 상당한 자본이 이 산업에 유입되는 한편 선박설계기술이 향상되었고, 따라서 결국 선주들의 이익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 다음 병목부분은 어장에 인접한 항구들이었다. 대구는 냉동처리를 하지 않고는 장기적으로 보관할 수 없기 대문에 항구의 기업들은 냉동사업으로 이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선박들의 항해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선주들은 조그만 항구에 배를 정박하기보다 보스턴과 같이 큰 항구에 배를 정박시키게 되었다. 큰 항구들은 소규모 항구들보다는 상당히 효율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항구들은 선주들에게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높은 이익을 실현했다. 마지막으로 냉동고를 설치한 선박들이 등자앻ㅆ고, 수산기업들은 냉동처리센터를 철저하게 무시할 수 있었다.
점진적으로 투자는 프로세스가 가장 효율적이지 않은, 즉 높은 이익이 문제와 기회를 동시에 알려주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가가각의 경우에 문제들은 해결되었고 병목에서의 이익은 투자 및 경쟁을 통해서 감소되거나 없어졌으며, 소비자들은 지속적인 가격하락과 효율성증가를 통해서 직접적인 이익을 누렸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 과정에서 이익을 누렸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특히 이익을 누렸다. 식사를 통해 더 많은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산주의의 아버지인 칼 마르크스도 이익시스템이 가격을 떨어드린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이렇게 썬다.
생필품의 싼 가격은 이익시스템의 무기다. 그것은 모든 나라들에게,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이익시스템을 채택하라고 강요한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소련이 세계최초의 공산국가가 될 때, 소련 건국의 기초를 다진 사람들은 가격과 이익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문제는 복잡했다. 마르크스가 가격과 이익이 어떻게 형성되고 사라지는가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공산체제에서는 이익조차도 '모든 사람들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가격과 이익을 유지하는 쪽으로 제도가 결정되었다.
경제학자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공적인 가격, 이익시스템은 정상적인 기능이 불가능하고, 오직 민간의 가격 및 이익시스템만이 유용한 정보흐름 및 계산을 제공해주며, 따라서 경제를 조직하고 지도하고 성장시킨다고 주장했다. 폰 미제스는 이 문제를 이렇게 요약했다.
가장 싼 시장에서 구매를 하지 못하고, 가장 판매하고 싶은 시장에서 판매를 하지 못하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다. ... 따라서 각각의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되는 일치된 행동규범을 확립해야 한다.
폰 미제스의 논의는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결코 성공적으로 반박되지는 못했다. 1960년대까지 소련은 다양한 평가에 따라 5개에서 9개에 이르는 가격, 이익시스템을 운영했지만 어떤 것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노르웨이 에ㅖ쏘사의 부사장이었던 오이슈타인 다힐은 이론과 실무 모두에 밝은 사람인데, "사회주의가 붕괴한 이유는 가격이 경제적 진실을 말하는 것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모든 평등주의자가 신호장치로서 자유가격 및 이익이 필요하다는 개념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미제스 연구소에 편지를 보낸 사람은 진정한 '사회주의'는 아직까지 시도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소련은 국가가 운영하는 자본주의체제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 자본주의 경제나 자유방임경제의 대안으로 중요하게 검토되었던 것은 분산화되고 화폐와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경제체제였다.
편지를 쓴 사람은 소련이 격리된 경제공동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주장 6 : 이익은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한 중요한 동기시스템으로서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보통 비즈니스게임을 이익으로 평가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비즈니스게임은 손실이나 도산을 준거로 평가되는것이 일반적이다. 경제학자 빌헬름 뢰프케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손실의 두려움이 이익에 대한 욕망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때가 많이 때문에 우리의 경제체제는 최종적으로는 도산에 의해 규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도 이와 비슷한 입장이었다. 그는 '채찍'이 적어도 '당근'만큼 중요하듯이 '이익'시스템은 '이익 및 손실'
시스템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익이라는 당근과 손실이라는 채찍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변화를 수용하거나 추진하도록 설득하는 역할을 한다. 경제성장은 본질적으로 변화를 수반한다. 과거의 끝없는 변화가 없었다면 우리 모두는 여전히 사냥을 하거나 수렵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우리 가운데 일부의 사람들이 여전히 제한된 경제환경에서 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변화를 거분하게 느끼고, 변화에 게으르게 대처한다. 특히 기득권자들은 가능한 한 변화에 격렬하게 저항하려 한다.
물론 사람들은 직접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이 동반된 타의에 의한 변화를 강요당할 수 있다. 스탈린은 무시무시한 폭력을 통해 무수한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에 따르도록 했다.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 강압은 극도로 비효율적이다. 강압에 눌린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능동적으로나 수동적으로 저항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로 미국 남북전쟁 이전에 남부에서 많은 노예를 거느렸던 사람들의 비망록을 보면, 노예들이 무시무시한 형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수동적인 저항을 했고, 이 때문에 노예소유주들이 안절부절못했던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런 억압적이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은 영국의 의류제조업자들이 미국에 지불하는 목화가격이 상승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었을 뿐이다.
주장 7 : 얼핏 보면 이익시스템은 대다수의 사람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이 원한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익시스템은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데, 실제로 최고의 이익은 부자들의 욕망과 변덕을 충족시켜 주는 것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대신 대다수 사람들의 순수한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써 이루어진다. 경제학자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이와 관련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대량 생산은 이익을 추구하는 산업의 근본원친이다. ... 이른바 좌파들이 가장 격렬하게 공격하는 대상인 거대기업은 ... 대중을 위해 제품이나 재화를 생산한다.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은 미제스의 이론을 다음과 같이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지난 세기에 이루어진 진보에 힘입어 수많은 사람들이 고된 노동에서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 부유층들의 전유물이던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부자들은 운송 및 의료의 발전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익추구의 엄청난 성과는 주로 일반일들의 유익에 이바지했다.
빈곤아동들까지도 빠짐없이 구두를 가지기 전에 이익시스템이 가동하지 않아 구두제조를 멈춘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익시스템이 의료수가를 떨어뜨릴 능력이 없어 가난한 사람들이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 안타깝고 난처한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익시스템은 비난을 받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어느 누구도 빈곤 아동들이 구두 없이 지내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상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제적 희소성이라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구두를 계속해서 제조하면 많은 사람들이 구두를 갖게 될 것이고, 구두의 가격ㄱ은 점점 더 떨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수요가 적은 상품 각각에 대해 높은 가격을 치르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정당하게 지적할 수 있는 시스템상의 유일한 '낭비'는 부자들이 자신들의 수입을 사치품에 소비하는 것이다.
의료문제는 빈곤아동등에게 충분하게 공급되지 않는 구두문제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 차이점은 정부의 개입이다. 영국과 캐나다의 경우 의료산업이 철저하게 공영화되어 있고, 미국의 경우는 (지불을 누가 하느냐의 관점에 따라) 절반이 공영화되어 있다. 따라서 앞에서 소개한 신시아 터커의 지적과는 정반대로 이윤창출활동이야말로 평등한 의료서비스를 위한 유일한 장치다. 이익기반 시스템과 정부주도시스템을 하나로 합치는 것은 그 실패가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정부가 의료비보조를 늘림에 따라 의료수요는 급격하게 늘었지만, 공급은 전혀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의료공급을 증가시키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정부의 규제와 면허제한으로 의료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의료공급이 증가하지 않아 부족한 상태에서 수요가 늘어남으로써 의료수가는 올라가고, 이에 따라 정부보조금 지출규모도 점점 커진다. 이렇게 됨으로써 의료수가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게 되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 고령자들, 실업자들이 피해를 입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나아가 비싼 의료비로 인한 실업이 발생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고용주들이 의료보험비용을 부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료수가가 높아지면 비용이 증가해서 고용ㅇ을 줄이기 때문이다. 21세기 초반 미국의 취업자는 감소하였는데, 이 중에서 회사 측의 의료보험료 부담증가로 인한 고용회피가 특히 많았다.
주장 8 : 많은 사람이 이익을 노동자로부터 '훔친' 것으로 생각하는데,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결국 고용주의 이익은 노동자를 착취한 결과가 아닌가? 노동자의 임금 역시 고용주와 사워서 쟁취하는 것이 아닌가? 노사관계야말로 '제로-섬 게임'의 고전적인 사례가 아닌가? 놀랍게도 그렇기 않다.
노사가 적대적인 회사는 살아남을 수 없다. 생존하고 번창하기 위해, 그리고 적대적인 경쟁업체들에게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고용주와 노동자는 상호 협력해야만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투자가 필요하다. 투자를 위해서 고용주는 단기이익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해야 하고 노동자는 임금인상과 상여금을 유보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데 필요한 도구, 교육 및 기타 지원을 노동자들에게 제공해주는 것이 바로 이런 투자이고 그 결과 투자금은 정당하게 회수될 것이고, 노동자도 임금이 인상되거나 상여금을 받게 될 것이다.
성공적으로 사업을 경영하는 데 있어 균형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임금이 지나치게 낮다면 노동자들은 직장을 떠날 것이다. 반대로 임금이 지나ㅋ치게 높으면 이익이 지나치게 낮아져 생산성을 높이거나 사업을 확장하는 데 자금을 제대로 투자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노동자들은 회사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적ㄷ극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한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노동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투자에서 얻은 이익의 전부나, 적어도 가격인하의 형태로 고객이 가져간 부분을 제외한 이익을 높은 임금의 형태로 획득하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서 사업의 이익과 노동자의 임금이 동반상승하거나 동반하락하는 경향을 발견하거나 이와 ㅠㅇ사한 패턴이 경제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보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이익이 노동자와 자본설비에 재투자되기 대문에 전체적으로 일자리가 이익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 역시 놀랍지 않다.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이 이익을 직접 누리지 못하는 유일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고용주들의 사치품소비다. 물론 사치품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이로부터 이득을 얻는다.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룰 때 따라오는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이익증가는 경제에 있어 최고의 희소식이다. 이 말은 고용수준이 높고 임금인상이 이어질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주장 9 : 한 기업의 임금상승은 '노동'분배를 전체적으로 증가시키지 않을 것이다.
A라는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부당하게 낮은 임금을 지급하고, 심지어 기존 제조설비를 유지하는 데조차 충분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다. 이익시스템이 가동하고, 노동자들이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떠나기 대문에 이 회사는 쇠락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지금은 큰 이상이 없다 하더라도 이제 곧 쇠퇴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고용주의 탐욕으로 능력이 뛰어난 노동자들을 잃게 되고, 이에 따라 더욱더 경쟁력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A 업체가 사업 자체는 건실한데도 노동자들에게 낮은 임금을 지급하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고, 협상 결과 임금이 상당히 인상되어 고용주가 더 이상 탐욕을 채울 수 없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경우 노동계에는 좋은 영향을 주었고 자본계에는 나쁜 타격을 입힌 것이다. 그렇게 볼 수 있지 않은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노동자들이 인상된 임금으로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것이기 대문이다. 이러한 새로운 구매가 발생함에 따라 다른 사업소유주들의 매출과 이익이 좋아지고 따라서 노동계 전체와 자본계 전체가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고 경제 전반에 걸친 이익구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이 때 탐욕스러운 소유주들은 제품가격을 인상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지급하게 된 높은 급여비용을 보상받으려 할 수도 있다. 이것은 대체적으로 매출과 이익을 감소시킴으로써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만약 역효과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소비자인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A 회사 제품의 가격은 인상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른 업체의 노동자들과 연금으로 살아가는 은퇴노동자들이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따라서 A회사의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높은 임금을 받게 된 것이 노동계에는 좋은 영향이고 자본계에는 타격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주장 10 : 종업원지주네는 문제를 해결하는 만큼의 문제를 만들어 낸다.
종업원지주제 또는 이익분배정책의 옹호자들은 마치 그들이 동기 부여가 잘된 효율적인노동력과 정당한 노동환경 및 강력한 소비수요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처럼 군다. 얼핏 생각하면 종업원지주제와 같은 제안에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는 반대의견이 굉장히 많다. 먼저, 노동자들은 결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이들은 정년이 되어 은퇴하기를 원한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까? 퇴직하는 종업원들은 대개 자신의 주식을 매각하려 하고, 이 같은 매각에서 이익을 남기려 한다. 따라서 이들은 옛 동료들이 아니라, 가장 높은 액수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주식을 팔려고 할 것이다. 만약 이것이 제한되어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오로지 동료 종업원들에게만 팔 수 있다면 회사주식을 보유한 종업원들은 온전한 권리를 가진 주주라고 할 수 없다. 우리사주 배각에 대한 제한조치는 기업이 외부자본을 조성하는 것을 박을 수도 있다.
주목할 점은 종업원들이 전체 경제를 소유할 경우, 저축과 투자가 곤두박칠친다는 것이다. 앞에서 살폈듯이 부자들은 저축과 투자를 할수밖에 없는 특별한 역할을 가진 존재들이다 이들만이 자신이 소비할 수 있는 것 이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익분배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비판받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익분배제는 진정한 '이익'분배가 아니라 가변적인 종업원보상제도를 의미한다. 진정한 이익분배제가 실현된다면 종업원들은 외부의 소유주들처럼 자신들의 '이익'의 어느 정도(어떤 때는 전부)를 사업에 남겨두어 재투자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장 11: 대개 학교에서는 거시경제를 그릇되게 가르치고 있다. 이익의 역할을 적절하게 인정하지 않는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는 19세기 초에 "높은 이익만큼 국가의 번영과 행복에 기여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리카도의 말은 옳았다. 따라서 그의 주장이 타당한데도 현대 거시경제학자들이 이익에 대해서 그토록 언급을 회피한다는 사실에 대해 의아하게 여겨야 한다. 거시경제 교과서들은 생산증가, 취업, 인플레이션 등에 대한 논의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들 교과서는 이익에 대해 다루는 데 인색하다. 아주 잠깐 다루거나 아예 다루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익이 논의될 경우 보통 전체로서의 경제가 아닌 개별 사업이나 산업을 다루는 미시경제 부분에서만 다룰 뿐이다.
# by 쇼옹 | 2009/01/28 14:30 | 트랙백 | 덧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