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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만찬장에서 돈봉투 돌린 검찰총장의 행태

 


김준규 검찰총장은 언론사 팀장급 출입기자들과 식사를 하며, 현금 400만원을 돌렸다.
김총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 이후 서먹해진 검찰과 언론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분위기를 돋우려 즉흥적으로 추첨이벤트를 벌였다고 한다.
'다른 건 다 바뀌었는데 검찰만 옛날 그대로다.'  라는 구호를 외치며, 검찰총장에 취임
한지 두달 남짓 된 상황에서 현금봉투를 돌린 것은 그의 사상의 진의가 의심되게끔 한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희고 흰 깃에 검을 때 묻힐세라,
진실로 검은 때 무치면 씻을 길이 없으리라.

 

 

by 쇼옹 | 2009/11/06 17:52 | 트랙백 | 덧글(0)

‘플루 재난’ 과도한 공포 경계해야 하나?

 

 

사실 어떤 것이 더 중요한 사안인지는 모르겠다.

플루가 더 심각할 것이냐. 아니면, 플루 공포 때문에 어려워질 소비경제가 더 심각할 것이냐.


현재 세계적으로 플루는 심각한 전염병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의 플루 치사율이 0.04%로 계절 독감보다도 낮다고는 하지만, 과연 그럴까?

통계량은 도출 방법과, 계수의 차이에 따라 값의 변화가 커지기 때문에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의 공포심을 낮추기 위해 0.04%라는 수치를 가지고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경제 하락세를 걱정하기 전에 먼저 국민 건강을 걱정하는 것이 맞지 싶다.

다른 사안도 아니고, 잘못하면 죽는데, 좀 더 걱정해서 좋을 것이 무엇인가.


아마 정치인들은 왠만하면, 돌아다니지 않을 것이고,

그들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엄청나게 과도한 조치를 취하고 있을 것이다. 


결론은 과도한 공포조장이 아니라, 맞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종플루가 처음 등장했을 때보다 시간이 꽤나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확산되고 있으니.

한겨울을 맞고있는 우리에게 안이한 대응은 치사로 인해 장례 쪽의 경제만을 살아나게 하지 않을까  싶다.
 
서로서로 경계심을 가지고, 앞으로 다가올 겨울을 맞는다면, 그 피해를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by 쇼옹 | 2009/11/04 08:39 | 트랙백 | 덧글(0)

삼성전자가 일본 전자업계의 흥망성쇠에서 얻어야 할 교훈

 

삼성전자의 올 3분기 영업이익이 일본의 대형 전자업체 9곳의 영업이익을
모두 합친 금액을 2배 가까이 넘어섰다고 일본 신문들이 보도했다.

일본 언론에서 자존심을 굽혀가며 이러한 통계를 낸 이유는, 일본의 전자 산업이
각성해야만 할 때이며 다시금 칼을 갈아야만 하는 때라는 거다.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제치고 일본이 처음으로 반도체 산업의 최강자가 되었을 때,
그들의 힘은 대단했다.

시간이 갈수록 헤이해지고 뒤에 따라오는 후진 기업들을 너무 얕본 탓에, 결국
삼성전자에게 패하기는 했지만.


그렇다면 일본은 미국처럼 반도체 산업을, IT 산업을 아예 버릴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 미래를 주도할 산업은 거의 IT 산업에 달려 있을 텐데 이 산업을 버린다면,
결국 선진 IT 산업을 가진 국가에게 계속 끌려 다니다시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처럼 자원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일본 역시 우리처럼 가진 것은 고급인력 뿐이라.

결론은, 일본도 어떻게 해서든, IT 시장을 살리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럴 때, 스파이가 많이 오겠지? ㅋ 보안에 주의해야 할 때이겠다.


 

미국이 20년, 일본은 15년이라고 했다.

삼성전자는 얼마나 이 IT 강 기업이라는 명목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

벌써부터 품질관리에서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신기술 개발과 동시에, 현기술의 유지 보수에 역시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또한 보안 유지에도 철저히 해야 하겠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 우리 나라의 위상을 IT 로서 높혔다는 것에 대해 삼성 전자에
대해 매우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점점 빨라지는 세대 교체의 기간에
걱정스럽기도 하다.


보다 길게 IT 강 기업이라는 명목을 유지해가길 바라며,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듯이,
좀 더 투명한 경영과 약간의 사회환원으로 자국민들에게도 사랑받는 삼성이 되었으면 한다.
 

by 쇼옹 | 2009/11/03 08:31 | 트랙백 | 덧글(0)

탐나는 녀석~

 
연주하는 휴대폰

카시오가 만든 터치스크린 휴대폰 CA001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피아노, 카림바,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드럼 등 11가지 악기들을 연주할 수 있으며 좋아하는 악기들의 소리를 서로 조합하여 간단한 작곡도 할 수 있다고...

오 정말 가지고 싶다. ㅜㅜ ㅋㅋㅋㅋㅋ 한국도 이런것 어서 만들었으면! ㅋ
만든다면 팬택에서 만들겠지? ㅎㅎㅎ

http://ca001.casio.jp/

by 쇼옹 | 2009/07/19 23:11 | 트랙백 | 덧글(0)

사적이윤은 필요한가? -> 필요없다 vs 필요하다

 
주장 12 : 이익주도 변화는 비합리적이고 혼란스로울 뿐이다.

이익 및 손실시스템은 규제가 없을 때 난장판이 된다. 당근은 지나치게 달콤해지고, 채ㅉ기은 지나치게 강해지고, 변화는 지나치게 급격해지고, 변화에 의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다. 변화가 우리를 어디로 이 끌고 갈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변화는 방향타가 없고 우리를 제대로 지도하지 못할뿐더러 급작스럽게 혼란에 빠뜨릴 수 이쏙, 파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장 13 : '주장 12'에 대한 반론

가격 및 이익시스템은 우리에게 혼란이 아닌 질서를 제공해준다. 이 질서는 소비자들의 희망에 따라 인도되고 지도된다. 이는 수 세기에 걸친 시행착오를 통해 발전되어 온 관습, 문법, 어법과 같은 자발적인 질서다.
흔히 질서는 지도자의 가시적인 명령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결코 진실이 아니다. 경제학자 프레드릭 하이예크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는 계획이 이루어질 것인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아니다. 이는 계획이 전체 경제체제를 위해서 한 명의 권위자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다수의 개인들에게 분산되어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다.

우리는 분명하고 가시적이며 중앙집권적인 명령을 내릴 수 있고, 지나치게 달콤해 보이는 당근을 제한할 수 있으며, 또 채찍을 달콤하게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변화속도를 느리게 할 수도 있고, 더 빠르게 조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때 우리는 더 많은 혼란을 겪게 되고, 퇴치해야 될 더 많은 경제적 부패 및 빈곤에 시달리게 된다.

주장 14 : 불확실하고 과도하며,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보상체계 등 그림의 떡 같은 핑크 빛 이익시스템으로 인해 사업소유주들은 단기간에 치고 빠지는 겡미을 선호하는 정신자세을 갖게 된다.

올바른 경제시스템은 사람들로 하여금 노동은 그 자체로 보상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기쁨을 높이 평가할 뿐만 아니라 인내심과 불굴의 의지로 노동에 접근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엄청난 대가를 쫓도록 만드는 생각은 이 모든 이상에 적대적이다.

주장 15 : '주장 14'에 대한 반론

이익시스템은 보물찾기도 아니고, 단기 성과주의를 조장하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새로운 사업은 일정기간 손실을 본다. 기업가들은 신념, 인내심과 함께 실패하고 있을 때,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일상적인 좌절을 겪고 있을 때를 파악하는 날카로운 판단력을 갖추어야 한다. 
인내심뿐만 아니라 날카로운 판단력까지 지니고 있다면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결국 이익을 실현할 것이고, 이익은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처음에 이 과정은 매우 더디다. 자본금 1만 달러로 시작할 경우, 이익이 매년 12%씩 늘어나면 20년이 걸려야 자본금이 10만달러로 늘어난다. 그러나 성장률이 계속 유지되고, 대수의 법칙(관찰대상의 수를 늘려갈수록 개개의 단위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요인은 중화되고 그 집단에 내재된 본질적인 경향성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러한 경향성은 관찰의 기간을 늘릴수록 안전도가 높아지면서 하나의 법칙성에 도달하게 됨. 이러한 법칙을 대수의 법칙이라 한다)이 적용되고 다시 20년이 지나면, 자본금은 100만 달러로 늘어난다. 1090만 달러가 6년마다 2배가 되면, 1장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총액은 엄청나게 불어날 것이다. 이 같은 시스템이 단기성과주의를 조장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꼭 인내심이 발휘되지 않더라도 이익시스템은 연간증가율이 매우 낮은 경우에도 성장과 복리를 계속 추구하도록 유도한다. 영국은 1780년부터 1914년까지 매년 겨우 2%에 지나지 않는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모든 세계가 경이롭게 생각하고,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표적인 경제강국이 되었다. 연간성장률 2%라는 수치가 대단하게 들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영국 이외에 어떤 국가도 장기간에 걸쳐 이 같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지 못했다. 

주장 16 : 경제성장은 협력을 요구한다. 이익시스템은 협력과 정반대인 적자생존의 치열한 경쟁을 조장한다. 

서로 대립하게 만드는 환경이 협력을 조성할 것이라고 어느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어불성설이다. 더 많은 협력을 원한다면 우리는 협력하는 윤리를 가르쳐야 하고, 이러한 윤리를 뒷받침하는 경제제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주장 17 : '주장 16'에 대한 반론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경쟁은 협력에 반하지 않는다. 이것은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처절한 싸움이 아니다. 시장경쟁은 공격성향을 전쟁이나 약탈과는 확연히 다른, 사회적으로 유익한 목적에 사용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대개의 시장경쟁은 올림픽과 같이 잘 조직된 스포츠처럼 협력적인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다수의 비즈니스경쟁은 스포츠와 달리 개인적이지 않다.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은 특정한 밀농사꾼의 생산이나 활동은 다른 농사꾼들에게 크게 직접적인 연향을 미치지 않는 까닭에 밀농사꾼들은 서로를 동료로 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엄격하게 말해 이들은 경제적인 경쟁자들이다. 진정으로 냉혹한 경쟁은 비즈니스와 달리 완전한 제로-섬게임인 정치에서 발견될 것이고, 심지어 교육, 사회서비스나 종교를 비롯한 모든 인간활도에서 발견될 수 있다. 

주장 18 : 우리는 인간의 천박한 본성이 아닌 고상한 본성에 호소하는 더 뒤어난 경제시스템을 만들어낼 수 있고 만들어내야 한다. 

종업원지주제와 함께 야기될 수 있는 문제가 어떤 것이든, 그 문제들은 협력적이고 혁신적인 정신으로 극복될 수 있다. 이를테면 실질적인 종업원지주제는 특별한 종업원들이 아닌 모든 종업원들의 유익을 위한 신뢰 위에 존재할 수 있다. 이 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종업원 지주들의 '현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업자본을 조성하기 위하여 주식을 외부인들에게 매각할 수 있다. 정부의 경제소유는 보통 제대로 기능하지 않지만 진정한 종업원지주제는 아직가지 시도되지 않았고, 엄청난 약속을 담보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익시스템은 인간 경제조직의 과도적인 형태, 곧 우리가 결국 비약적으로 성장해서 극복할 수 있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by 쇼옹 | 2009/01/28 14:58 | 트랙백 | 덧글(0)

사적이윤은 필요한가? => 그렇다, 필요하다.

 
주장 5 : 가격과 이익은 필요불가결한 신호장치로서 함께 기능한다

욕망 및 욕구, 즉 특정한 제품에 대한 수요는 항상 변화한다. 소비자들은 지금 당장은 X라는 물건을 택하지만 나중에는 Y라는 물건을 택한다. 한편 제품공급 역시 엄청나게 많은 변수에 따라 변화한다. (예를 들어 기후는 곡물의 공급에 영향을 미친다.) 가격에 의해 수요와 공금급에 대한 정보가 모든 사람에게 알려진다. 높은 가격은 그 재화의 수요가 높다는 사실을, 낮은 수요는 그 재화의 가격이 낮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러한 정보는 경제적 삶을 간결하게 만들어준다.
가격이 수요, 공급상황을 알려주는 것이긴 하지만, 이익이 없는 재화의 가격은 존재할 수 없으며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내가 사과소스를 제조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수요가 엄청나거나 사과가격이 엄청나게 저렴하거나 설탕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이익이 높다고 가정해보자. 높은 이익으로 인해 나는 현금(또는 신용)을 얻고, 나의 생산성은 더욱 증가한다. 그 밖에 다른 생산자들 역시 나와 동일하게 사업을 확대할 거능성이 높고, 몇 명의 새로운 생산자들이 사과소스 제조업에 뛰어들 수 잇다. 어느 경우든 이익이 평균수준이 될 때ㅔ까지 공급이 늘어날 것이다.
이와 달리, 수익성이 상당히 떨어지고 공급이 위축되면, 다시 수요와 공급은 균형을 이루게 된다. 사과소스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구입할 수 있고, 생산자들은 계속해서 균형을 이루기 위해 운영에 필요한 이익을 실현하려 할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경쟁시장에서 이익을 추구할수록 공급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고, 다라서 소비자 가격은 좀처럼 올라가지 않고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서로 경쟁하며 최선을 다해서 비용을 줄이려 애쓴다. 경쟁의 역동성으로 생산비용이 낮아지고, 결국 제품가격이 낮아지는 것이다.
이익시스템은 경제시스템에서 생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효율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이익흐름이 정체되는 '병목'부분을 정확하게 파악한다. 이를테면 마크 쿨란스키는 자신의 책 <세계를 바꾼 어느 물고기의 역사>에서 16세기 이후의 유럽사람들이 섭취하던 단백질 중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대구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이와 함께 과거 거대한 산업이었던 대구어획산업의 발전을 다루고 잇다. 첫 번째 병목부분은 지나치게 작고 부서지기 쉬운 선박이었다. 이 같은 이유로 상당한 자본이 이 산업에 유입되는 한편 선박설계기술이 향상되었고, 따라서 결국 선주들의 이익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 다음 병목부분은 어장에 인접한 항구들이었다. 대구는 냉동처리를 하지 않고는 장기적으로 보관할 수 없기 대문에 항구의 기업들은 냉동사업으로 이익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선박들의 항해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선주들은 조그만 항구에 배를 정박하기보다 보스턴과 같이 큰 항구에 배를 정박시키게 되었다. 큰 항구들은 소규모 항구들보다는 상당히 효율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규모 항구들은 선주들에게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높은 이익을 실현했다. 마지막으로 냉동고를 설치한 선박들이 등자앻ㅆ고, 수산기업들은 냉동처리센터를 철저하게 무시할 수 있었다.
점진적으로 투자는 프로세스가 가장 효율적이지 않은, 즉 높은 이익이 문제와 기회를 동시에 알려주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가가각의 경우에 문제들은 해결되었고 병목에서의 이익은 투자 및 경쟁을 통해서 감소되거나 없어졌으며, 소비자들은 지속적인 가격하락과 효율성증가를 통해서 직접적인 이익을 누렸다. 물론 모든 사람이 이 과정에서 이익을 누렸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특히 이익을 누렸다. 식사를 통해 더 많은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산주의의 아버지인 칼 마르크스도 이익시스템이 가격을 떨어드린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1848년 <공산당 선언>에서 이렇게 썬다.

생필품의 싼 가격은 이익시스템의 무기다. 그것은 모든 나라들에게,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이익시스템을 채택하라고 강요한다.

제 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소련이 세계최초의 공산국가가 될 때, 소련 건국의 기초를 다진 사람들은 가격과 이익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문제는 복잡했다. 마르크스가 가격과 이익이 어떻게 형성되고 사라지는가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공산체제에서는 이익조차도 '모든 사람들 위한 것'이기 때문에 가격과 이익을 유지하는 쪽으로 제도가 결정되었다.
경제학자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공적인 가격, 이익시스템은 정상적인 기능이 불가능하고, 오직 민간의 가격 및 이익시스템만이 유용한 정보흐름 및 계산을 제공해주며, 따라서 경제를 조직하고 지도하고 성장시킨다고 주장했다. 폰 미제스는 이 문제를 이렇게 요약했다.

가장 싼 시장에서 구매를 하지 못하고, 가장 판매하고 싶은 시장에서 판매를 하지 못하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다. ... 따라서 각각의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되는 일치된 행동규범을 확립해야 한다.

폰 미제스의 논의는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결코 성공적으로 반박되지는 못했다.  1960년대까지 소련은 다양한 평가에 따라 5개에서 9개에 이르는 가격, 이익시스템을 운영했지만 어떤 것도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다. 노르웨이 에ㅖ쏘사의 부사장이었던 오이슈타인 다힐은 이론과 실무 모두에 밝은 사람인데, "사회주의가 붕괴한 이유는 가격이 경제적 진실을 말하는 것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모든 평등주의자가 신호장치로서 자유가격 및 이익이 필요하다는 개념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미제스 연구소에 편지를 보낸 사람은 진정한 '사회주의'는 아직까지 시도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소련은 국가가 운영하는 자본주의체제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 자본주의 경제나 자유방임경제의 대안으로 중요하게 검토되었던 것은 분산화되고 화폐와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경제체제였다.

편지를 쓴 사람은 소련이 격리된 경제공동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주장 6 : 이익은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한 중요한 동기시스템으로서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보통 비즈니스게임을 이익으로 평가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비즈니스게임은 손실이나 도산을 준거로 평가되는것이 일반적이다. 경제학자 빌헬름 뢰프케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손실의 두려움이 이익에 대한 욕망보다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때가 많이 때문에 우리의 경제체제는 최종적으로는 도산에 의해 규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도 이와 비슷한 입장이었다. 그는 '채찍'이 적어도 '당근'만큼 중요하듯이 '이익'시스템은 '이익 및 손실'
시스템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익이라는 당근과 손실이라는 채찍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변화를 수용하거나 추진하도록 설득하는 역할을 한다. 경제성장은 본질적으로 변화를 수반한다. 과거의 끝없는 변화가 없었다면 우리 모두는 여전히 사냥을 하거나 수렵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우리 가운데 일부의 사람들이 여전히 제한된 경제환경에서 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변화를 거분하게 느끼고, 변화에 게으르게 대처한다. 특히 기득권자들은 가능한 한 변화에 격렬하게 저항하려 한다.
물론 사람들은 직접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이 동반된 타의에 의한 변화를 강요당할 수 있다. 스탈린은 무시무시한 폭력을 통해 무수한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에 따르도록 했다. 그렇지만 대개의 경우 강압은 극도로 비효율적이다. 강압에 눌린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능동적으로나 수동적으로 저항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로 미국 남북전쟁 이전에 남부에서 많은 노예를 거느렸던 사람들의 비망록을 보면, 노예들이 무시무시한 형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수동적인 저항을 했고, 이 때문에 노예소유주들이 안절부절못했던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런 억압적이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은 영국의 의류제조업자들이 미국에 지불하는 목화가격이 상승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었을 뿐이다.

주장 7 : 얼핏 보면 이익시스템은 대다수의 사람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이 원한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익시스템은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데, 실제로 최고의 이익은 부자들의 욕망과 변덕을 충족시켜 주는 것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대신 대다수 사람들의 순수한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써 이루어진다. 경제학자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이와 관련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대량 생산은 이익을 추구하는 산업의 근본원친이다. ... 이른바 좌파들이 가장 격렬하게 공격하는 대상인 거대기업은 ... 대중을 위해 제품이나 재화를 생산한다.

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먼은 미제스의 이론을 다음과 같이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지난 세기에 이루어진 진보에 힘입어 수많은 사람들이 고된 노동에서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과거에 부유층들의 전유물이던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부자들은 운송 및 의료의 발전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익추구의 엄청난 성과는 주로 일반일들의 유익에 이바지했다.

빈곤아동들까지도 빠짐없이 구두를 가지기 전에 이익시스템이 가동하지 않아 구두제조를 멈춘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익시스템이 의료수가를 떨어뜨릴 능력이 없어 가난한 사람들이 의료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 안타깝고 난처한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익시스템은 비난을 받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어느 누구도 빈곤 아동들이 구두 없이 지내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상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제적 희소성이라는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구두를 계속해서 제조하면 많은 사람들이 구두를 갖게 될 것이고, 구두의 가격ㄱ은 점점 더 떨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수요가 적은 상품 각각에 대해 높은 가격을 치르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정당하게 지적할 수 있는 시스템상의 유일한 '낭비'는 부자들이 자신들의 수입을 사치품에 소비하는 것이다.
의료문제는 빈곤아동등에게 충분하게 공급되지 않는 구두문제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 차이점은 정부의 개입이다. 영국과 캐나다의 경우 의료산업이 철저하게 공영화되어 있고, 미국의 경우는 (지불을 누가 하느냐의 관점에 따라) 절반이 공영화되어 있다. 따라서 앞에서 소개한 신시아 터커의 지적과는 정반대로 이윤창출활동이야말로 평등한 의료서비스를 위한 유일한 장치다. 이익기반 시스템과 정부주도시스템을 하나로 합치는 것은 그 실패가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핵심은 정부가 의료비보조를 늘림에 따라 의료수요는 급격하게 늘었지만, 공급은 전혀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의료공급을 증가시키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정부의 규제와 면허제한으로 의료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의료공급이 증가하지 않아 부족한 상태에서 수요가 늘어남으로써 의료수가는 올라가고, 이에 따라 정부보조금 지출규모도 점점 커진다. 이렇게 됨으로써 의료수가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게 되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 고령자들, 실업자들이 피해를 입는 악순환이 거듭된다. 나아가 비싼 의료비로 인한 실업이 발생하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고용주들이 의료보험비용을 부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의료수가가 높아지면 비용이 증가해서 고용ㅇ을 줄이기 때문이다. 21세기 초반 미국의 취업자는 감소하였는데, 이 중에서 회사 측의 의료보험료 부담증가로 인한 고용회피가 특히 많았다.

주장 8 : 많은 사람이 이익을 노동자로부터 '훔친' 것으로 생각하는데,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결국 고용주의 이익은 노동자를 착취한 결과가 아닌가? 노동자의 임금 역시 고용주와 사워서 쟁취하는 것이 아닌가? 노사관계야말로 '제로-섬 게임'의 고전적인 사례가 아닌가? 놀랍게도 그렇기 않다.
노사가 적대적인 회사는 살아남을 수 없다. 생존하고 번창하기 위해, 그리고 적대적인 경쟁업체들에게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고용주와 노동자는 상호 협력해야만 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투자가 필요하다. 투자를 위해서 고용주는 단기이익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해야 하고 노동자는 임금인상과 상여금을 유보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데 필요한 도구, 교육 및 기타 지원을 노동자들에게 제공해주는 것이 바로 이런 투자이고 그 결과 투자금은 정당하게 회수될 것이고, 노동자도 임금이 인상되거나 상여금을 받게 될 것이다.
성공적으로 사업을 경영하는 데 있어 균형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임금이 지나치게 낮다면 노동자들은 직장을 떠날 것이다. 반대로 임금이 지나ㅋ치게 높으면 이익이 지나치게 낮아져 생산성을 높이거나 사업을 확장하는 데 자금을 제대로 투자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노동자들은 회사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적ㄷ극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한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노동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투자에서 얻은 이익의 전부나, 적어도 가격인하의 형태로 고객이 가져간 부분을 제외한 이익을 높은 임금의 형태로 획득하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서 사업의 이익과 노동자의 임금이 동반상승하거나 동반하락하는 경향을 발견하거나 이와 ㅠㅇ사한 패턴이 경제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보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이익이 노동자와 자본설비에 재투자되기 대문에 전체적으로 일자리가 이익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 역시 놀랍지 않다.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이 이익을 직접 누리지 못하는 유일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고용주들의 사치품소비다. 물론 사치품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이로부터 이득을 얻는다.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룰 때 따라오는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이익증가는 경제에 있어 최고의 희소식이다. 이 말은 고용수준이 높고 임금인상이 이어질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주장 9 : 한 기업의 임금상승은 '노동'분배를 전체적으로 증가시키지 않을 것이다.

A라는 회사가 노동자들에게 부당하게 낮은 임금을 지급하고, 심지어 기존 제조설비를 유지하는 데조차 충분한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가정해보다. 이익시스템이 가동하고, 노동자들이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떠나기 대문에 이 회사는 쇠락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지금은 큰 이상이 없다 하더라도 이제 곧 쇠퇴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고용주의 탐욕으로 능력이 뛰어난 노동자들을 잃게 되고, 이에 따라 더욱더 경쟁력을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A 업체가 사업 자체는 건실한데도 노동자들에게 낮은 임금을 지급하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고, 협상 결과 임금이 상당히 인상되어 고용주가 더 이상 탐욕을 채울 수 없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경우 노동계에는 좋은 영향을 주었고 자본계에는 나쁜 타격을 입힌 것이다. 그렇게 볼 수 있지 않은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노동자들이 인상된 임금으로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할 것이기 대문이다. 이러한 새로운 구매가 발생함에 따라 다른 사업소유주들의 매출과 이익이 좋아지고 따라서 노동계 전체와 자본계 전체가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고 경제 전반에 걸친 이익구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이 때 탐욕스러운 소유주들은 제품가격을 인상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지급하게 된 높은 급여비용을 보상받으려 할 수도 있다. 이것은 대체적으로 매출과 이익을 감소시킴으로써 역효과를 불러올 것이다. 만약 역효과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소비자인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A 회사 제품의 가격은 인상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른 업체의 노동자들과 연금으로 살아가는 은퇴노동자들이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따라서 A회사의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높은 임금을 받게 된 것이 노동계에는 좋은 영향이고 자본계에는 타격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주장 10 : 종업원지주네는 문제를 해결하는 만큼의 문제를 만들어 낸다.

종업원지주제 또는 이익분배정책의 옹호자들은 마치 그들이 동기 부여가 잘된 효율적인노동력과 정당한 노동환경 및 강력한 소비수요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처럼 군다. 얼핏 생각하면 종업원지주제와 같은 제안에 반대할 사람이 없을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는 반대의견이 굉장히 많다. 먼저, 노동자들은 결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이들은 정년이 되어 은퇴하기를 원한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까? 퇴직하는 종업원들은 대개 자신의 주식을 매각하려 하고, 이 같은 매각에서 이익을 남기려 한다. 따라서 이들은 옛 동료들이 아니라, 가장 높은 액수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주식을 팔려고 할 것이다. 만약 이것이 제한되어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오로지 동료 종업원들에게만 팔 수 있다면 회사주식을 보유한 종업원들은 온전한 권리를 가진 주주라고 할 수 없다. 우리사주 배각에 대한 제한조치는 기업이 외부자본을 조성하는 것을 박을 수도 있다.
주목할 점은 종업원들이 전체 경제를 소유할 경우, 저축과 투자가 곤두박칠친다는 것이다. 앞에서 살폈듯이 부자들은 저축과 투자를 할수밖에 없는 특별한 역할을 가진 존재들이다 이들만이 자신이 소비할 수 있는 것 이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익분배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비판받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익분배제는 진정한 '이익'분배가 아니라 가변적인 종업원보상제도를 의미한다. 진정한 이익분배제가 실현된다면 종업원들은 외부의 소유주들처럼 자신들의 '이익'의 어느 정도(어떤 때는 전부)를 사업에 남겨두어 재투자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장 11: 대개 학교에서는 거시경제를 그릇되게 가르치고 있다. 이익의 역할을 적절하게 인정하지 않는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는 19세기 초에 "높은 이익만큼 국가의 번영과 행복에 기여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리카도의 말은 옳았다. 따라서 그의 주장이 타당한데도 현대 거시경제학자들이 이익에 대해서 그토록 언급을 회피한다는 사실에 대해 의아하게 여겨야 한다. 거시경제 교과서들은 생산증가, 취업, 인플레이션 등에 대한 논의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들 교과서는 이익에 대해 다루는 데 인색하다. 아주 잠깐 다루거나 아예 다루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익이 논의될 경우 보통 전체로서의 경제가 아닌 개별 사업이나 산업을 다루는 미시경제 부분에서만 다룰 뿐이다.

by 쇼옹 | 2009/01/28 14:30 | 트랙백 | 덧글(0)

사적이윤은 필요한가? -> 아니다, 필요하지 않다.

 
비즈니스를 통해 획득된 사적이윤은 자본주의경제에서 개인적부의 원천이 된다. 그래서 평등주의자들은 사적이윤을 추구하고 실현하는 것을 탐탁하지 않게 여기고 다음과 같은 주장을 제기한다.

주장 1 : 민영기업은 소유자들과 노동자들이 귾임없이 대립하며 서로 간에 갈등을 일으키게 만든다. 이러한 갈등은 결국 모든 사람에게 패배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사업자는 소비자들에게 부당한 가격을 부과함으로써 큰 이익을 올릴 수 있다. 이보다 일반적인 이익획득방법은 종업원들에게 임금을 충분히 주지 않는 것이다. 사업을 소유한 사람들은 노동자들과 그들의 희생에 의존하고 이씅며 그들의 이익은노동자들에서 나온다. 그 러므로 소유자들의 상황과 이익은 노동자에 의해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사업소유주들은 노동자들과의 갈등에서 상황을 좌지우지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노동조합이 동등한 협상조건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는 것을 두려워하기 대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이윤획득시스템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고 결과적으로 모든 사람이 패배하도록 만든다. 노동자의 수입을 제한하는 시스템은 노동자들의 소비자로서의 구매력을 제한하는 것이다.소유주들과 노동자들 간에 보다 정당한 분재가 실현된다면, 노동자들이 자신의 늘어난 소득을 소비하게 되고 이에 따라 경제는 순환적으로 좋아질 것이다.
단기적으로 소유주들과 노동자들 간의 갈등을 줄이고, 부족한 소비자구매력을 발전적으로 회복시키는 최고의 방법은 노동자의 참여를 증진시키고, 수익공유계획을 개발하는 것이다.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노동자가 소유하는 비즈니스다.

주장 2 : 이익시스템은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다.

이익은 순수한 생산비용 위에 쌓여 있는 불필요한 특별비용이다. 이것만으로도 이익시스템은 닝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낭비를 제거한다면 가격은 떨어지고 모든 사람이 잘 살게 될 것이다. 철학자 테드 혼드리치는 이와 관련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몇 가지 가치 있는 물건을 생산하는 두 가지 방법이 이쏙, 두 번째 방법이 물건을 생산하는 비용과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 , 불필요한 엄청난 수익과 관련이 있다면, ... , 두 번째 방법은 명백하게, 그리고 엄청나게 비효율적이다.

주장 3 : 이익시스템의 부당성과 비효율성을 논외로 하더라도 이익시스템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재화를 제공해주지는 못한다.

사적인 비즈니스는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모든 사업은 미래의 불특정한 시간이 아니라 지금 당장 이익을 실현하려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고객들의 현재나 미래의 필요성이 아니라 소유주들(다시 말해 소수의 소유주들)의 즉각적인 이익기회에 집중한다. 사실 '이익을 위한 생산'과 '사람들이 사용하기 위한 생산' 간에는 확연한 갈등이 있고, 우리의 기존 시스템 하에서 '사람들이 사용하기 위한 생산'은 후순위다. 역사학자인 하워드 진은 이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익동기는 생산의 중요한 목적을 이익으로 삼는다. 따라서 중요한 것들을 생산하지 못하게 하고, 시시한 것들을 생산하게 한다. 또한 일부의 사람을 부자로 만들고 일부의 사람을 가난하게 만듦으로써 우리의 전체 경제 및 사회시스템을 왜곡시켜 왔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유럽의 젊은 시위대는 "사람은 수익이 아니다"라는 구호가 적힌 깃발과 플랜카들를 들고 있다.

주장 4 : 심지어 적절한 제품을 생산할 경우에도 이익시스템은 적절한 제품을 가장 필요로 하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위의 상황은 몇몇의 소비재 영역에서는 용인될 수 있지만 보건의료와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삶의 영역에서는 용인될 수 없다. <애틀랜타 저널컨트티튜션>의 여론면 편집자인 신시아터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익동기는 모든 기업을 개선시키지 않는다. ... 보건 산업은 현재, ...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다. ... 보건산업은 가격을 인상시ㅣ고 ... 서비슬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다. ... 이는 가혹한 것이다.

by 쇼옹 | 2009/01/28 13:38 | 트랙백 | 덧글(1)

사적이윤은 필요한가?

 
필요하지 않다.

- 이익추구는 갈등을 만들며, 갈등은 사람과 사회를 파괴한다.
- 비용에 이익을 추가함으로써 사격이 상승하는 비효율이 있다.
- 성장에는 협력이 요구되는데 이익추구는 적자생존의 치열한 경쟁을 조장한다.
- 이익만을 위한 비즈니스는 사회적 필요를 외면한다.

VS

필요하다.

- 가격과 이익은 필수불가결한 시장의 신호장치다.
- 이익은 객관적 평가가 가능한 중요한 동기유발시스템이다.
- 이익은 대량생산을 만들고 대량생산은 가격을 낮춰 사회에 득이 된다.
- 사적이익은 결국 재투자되어 사회적 이익으로 확장된다.

by 쇼옹 | 2009/01/28 13:16 | 트랙백 | 덧글(0)

부자들과 민주주의는 공존하는가? -> 그렇다, 공존한다.

 
주장 3 : 자세히 살펴보면 자유시장은 처음에 나타난 모습보다는 훨씬 민주적이다.

자유시장경제가 힘 있는 소비자인 부자들에게 '1달러에 1표'라는 방식으로 우월한 발언권을 제공한다는 주장에 대해 살펴보자. 이 말은 현실에서 그대로 들어맞는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이 발견된다. 먼저, 저축과 투자를 할 때 부자들은 많은 소비를 하지 않는다. 이들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돈을 소비시장에 내놓는다. 그리고 부자가 아닌 사람들은 부자들보다 수적으로 월등하게 많고 다라서 부자가 아닌 소비자들의 돈은 부자 소비자들의 돈보다 양적으로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생산방향을 실제로 저정하는 사람들은 바로 '유권자'이다.
현실에서 부자가 아니라 평균적인 소비자들이 생산방향을 통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사용자와 종업원의 역할에 대해 다시 인식할 수 있다. 소비자로 행동하는 종업원들이 바로 진정한 고용주이며, 사용자들은 궁극적으로 피고용인의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완전한 경쟁시장경제에서 노동자들이 실제로 자신을 위해 일한다는 이 개념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영국의 경제학자 에드윈 캐넌은 1928년에 "임금노동자들이 공익이나 자신이 생산한 재화나 용역의 소비잗ㄹ을 위해 일하지 않고, 자본주의 고용주만을 위해 노동하고 있다는 악의적인 선전이 판을 친다. 하지만 이는 단지, ..., 왜곡된 사실에 불과하다" 라고 말했다.
캐넌의 주장은 여러 차원에서 논의될 수 이싿. 그의 논의에 따르면 확실히 직접 생산을 하는 노동자가 주도권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수표에 서명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의 문제가 있다. 남편 시드니 웹과 함께 20세기 초반의 영국의 사회주의를 이끈 비어트리스 포터는 자신의 비망록에 "아버지의 사업에서는 모든 사람이 사장인 아버지가 내린 명령에 복종해야 했다. 아버지만이 명령을 내렸을 뿐 어느 누구도 그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라고 기록했다.
이에 대해 경제학자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이는 매우 짧은 생각이다. 명령은 소비자들에 의해, 구매자들에 의해 그의 아버지에게 내려진다. 안타깝게도 포터는 이런 명령을 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폰 미제스는 다음과 같이 말을 잇고 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와 수사법은 자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예를 들면 현대의 각 산업과 거대 비즈니스의 리더들을 지칭할 때 '초콜릿왕, 목화왕, 자동차왕' 등으로 지칭하곤 한다. 이런 용어는 현대의 산업리더를 과거의 왕이나 귀족의 위치에 올려놓고 이들의 지위가 비슷하다는 암시를 던진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 차이는 엄청나다. 초콜릿왕은 전혀 지배하지 못하고 봉사만 할 뿐이다. 이 '왕'은 자신의 신하인 소비자들의 선량한 은혜 안에만 머물러 있어야 한다. 고객들에게 더 뛰어난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가 경쟁할 수 밖에 없는 다른 업체들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제공하는 위치를 떠나는 순간 그는 자신의 '왕국'을 잃게 된다.

소비자주권이라는 개념은 여러 가지 이유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 하나의 관점은 대부분의 소비자는 지나치게 무지한 까닭에, 심지어 자신의 욕구조차 모르는 까닭에, 또한 선전과 광고에 지나치게 쉽게 현혹되고 조작되는 까닭에 도저히 주도권을 가진 사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견해다. 부자들이 자신들의 금고와 탐욕을 채우기 위해 종업원들을 냉혹하고 단조로운 노동으로 내몰고, 소비자들을 현혹하며 끌고 다니면서도, 소비자가 시장의 주권자라고 말하는 것은 노골적인 기만이 아닌가? 이에 대해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다른 각도로 강변하고 있다.

도덕주의자와 설교자의 비판 ,,, 은 요점을 놓치고 있다. 소비자들이 성서보다는 알코올을, 심각한 책보다는 추리소설을 선호하는 것은 기업가들의 잘못이 아니다. ,,, 기업가들이 '양질의' 재화를 판매하는 것보다 '저질의' 재화를 판매하는 데서 엄청난 수익을 실현하려 든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모함이다. 그의 수익은 그가 ,,, 소비자들이 가장 강렬하게 원하는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면 제공할 수록 그만큼 많이 실현되는 것이다.

주장 4 : 부자들은 '지배자'가 아니라 '수탁인'으로 묘사되어야 한다

평균적인 소비자들이 경제를 좌지우지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또한 소비자들이 궁극적인 지배자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명목적인 지배자들의 역할, 즉 부유한 사업의 소유주들과 기업의 경영진들의 역할을 적절하게 정의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폰 미제스는 우리에게 그들을 왕이나 귀족이나 다른 유력자로 불러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확실히 그들은 근로자들로 묘사될 수는 없다. 경제학자 아바 러너는 '사회적 대리인'이라는 용어를 제시했다.

수백만 달러의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은 실제로 사회를 위한 대리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마치 부는 넓게 말해 사회 전체에 속해 있는 것과 같고, 그들은 나머지 사람들을 대행해서 부를 추구할  뿐이다.

앞에서 소개했던 빌헬름 뢰프케는 '공무원' 도는 '수탁인'이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비즈니스 소유자들은 실제로 엄격한 성과원칙에 따라 선발되어 생산수단을 탁월하게 관리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일반적인 현상을 말하자면 자신들의 성과에 대해 사회주의 국가의 공무원의 임금보다는 더 적은 임금을 받는 사회복지 공무원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헨리 포드와 같은 사람들은, 수탁인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엄청난 금융손실이라는 즉각적인 형벌을 받는 수탁인처럼 우리의 생산자원을 관리하는 실질적인 공무원이다.

사회적 대리인, 공무원, 수탁인 등과 같은 용어를 부자들에게 적용했을 때 멋있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부자들은 이런 주장에 황당해 할 것이다. 그러나 폰 미제스는 "시장경제에서 자본과 토지를 소유한 사람들은, ... ,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에서 이익을 얻기 위해 소비자들을 섬겨야 한다"라고 말함으로써, 러너와 빌헬름 뢰프케의 주장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주장 5 : 뢰프케, 폰 미제스, 헨리 해즐릿이 강조했듯이 섬기는 사람으로서의 비즈니스 리더라는 개념은 부자들이 엄격한 테ㅔ스트를 거친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부자들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곧 소비자들이 그 기업의 제품을 구매할 수도 있고 구매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이야 말로 최고의 시험이 아니겠는가

만약 이러한 조건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부자들은 결국 자신의 부를 불법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고, 민주주의의 지원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 기업들의 규모가 작아진다는 증거는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부자들의 부가 줄어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자료를 가지고 있다.

- 미국 연방국세청이 9년에 걸쳐 최고 납세자 400명에 대한 통계를 분석한 결과, 9년 연속 통계에 오른 사람은 단 1%에 불과하다는 자료를 발표했다.
- <포브스>는 24년에 걸쳐 미국의 부자(소득이 아닌 자산 기준) 400명에 대한 통계를 분석한 결과, 24년 동안 통계에 오른 사람은 단 50명(13%)에 불과하다는 자료를 발표했다.
- 재무부 공무원이자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었던 글렌 허바드는 10년 동안 최고 1%의 납세자를 자세히 살핀 결과, 1/3 정도의 사람이 최고 납세자군에서 탈락되었고, 최초의 최고그룹의 평균소득이 11% 떨어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

주장 6 : 앞에서 살폈듯이 자유시장경제는 민주적이다. 부자들을 마음대로 채용하고 해고할 수 있는 평균 소비자들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이야기의 결론은 아니다.

'1달러단 1표'의 자유시장경제는 실제로 '1사람당 1표'의 정치적 민주주의보다 뛰어나다. 치밀한 ㅂ준석을 해보면 자유시장경제가 더 민주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주장은 다음과 같다. 소비자민주주의에서 내가 제품 X에 대해서 투표를 하면 나는 제품 X를 얻는다. 당신이 제품 Y에 투표를 하면 당신은 제품 Y를 취득할 수 있다. 이는 오직 한 사람의 후보자만이 승리 할 수 있고, 최종결과에서는 그 어떤 표도 크게 중요하지 않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심지어 정치적 선거가 실제로 국민들의 뜻을 반영하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자격이 있는 유권자의 60%가 투표에 참여하고, 그들은 국가, 주 또는 시의 총인구의 50%를 대표하고, 선거에 당선된 후보가 투표수의 60%를 얻은 선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에 인구의 18%만이 당선된 후보자를 선택했을 뿐이다. 여전히 다른 사람들은 낙선된 후보자들을 원한다. 하지만 이런 결정은 법집행하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와 달리 자유시장경제의 민주주의는 승리자가 독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투표를 비율적으로 계산한다. 소수와 다수가 완전히 표현을 하고 어느 누구도 지배하지 않으면서 정확하게 유권자들이 원하는 만큼 후보자(제품) A를 얻고, 유권자들이 원하는 만큼 후보자(제품) B를 얻는다.

주장 7 : '주장6'에 대한 반론
'사회를 위한 대리인'과 '사회적 부의 수탁인'으로서의 부자라는 개념은 기만적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부자들은 이타적인 이유가 아니라 이기적인 이유로 부를 축적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매우 적은 투표를 하는 반면 한 명의 부자가 엄청난 투표권을 가질 수 있을 경우, 이런 경제체제를 '민주적'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잘못된 것은 없다.

by 쇼옹 | 2009/01/28 12:47 | 트랙백 | 덧글(0)

부자들과 민주주의는 공존하는가? -> 아니다, 공존할 수 없다.

 
주장 1 : 부자들은 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의도적으로 민주주의를 방해한다.

막대한 부와 민주주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공존할 수 없다. 먼저 부자들은 자신의 돈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구매함으로써 민주주의 프로세스를 파괴한다. 민주주의가 약화됨에 따라 볍률은 점점 조롱당하고,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차이는 더욱더 커진다. 저술가이자 버지니아주의 공식 계관시인이며 버지니아대학 교수인 조지 개럿은 그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화이트칼라와 기업 범죄, ... , 그리고 부자들과 사난한 사람들의 격차, ... , 는 민주주의 정부의 품격을 심각하게 손상시키고 있다. 우리의 투표는 매우 하찮고, 당신의 투표도 내 투표도 하찮을 뿐이다.

주장 2 : 우리는 완전한 민주주의를 원한다.

경제적 민주주의 없이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완성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와 경제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민주주의와 경제는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완전한 민주주의를 형성한다. 완전한 민주주의야말로 정확하게 우리가 원하는 것이다. 경제학자 폴 맥컬리는 "민주주의는 '한 사람이 한 표'라는 사회주의적 개념으로 시작한다. 그렇다. 사회주의적 개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들은 몹시 불균형할 정도로 우월한 발언권을 갖게 된다. 이것은 민주주의 이념과 정반대되는 현상, 이를 테면 1달러(혹은 유로나 엔)당 1표라는 현실을 만들어낸다. 한 사람이 한 표라는 주장과 1달러당 1표라는 주장은 확실히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렇게 부와 민주주의가 공존하지 못하면 긴장이 야기된다. 이런 긴장은 민주주의를 포기하거나, 모든 사람들이 같은 돈을 소유하도록 부를 평등하게 만들 때만 해소될 수 있다.

by 쇼옹 | 2009/01/28 12:19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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